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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02:25 】 |
Kumdo Fraud - Bonguk Geom

Muyedobotongji introduction
クムド詐欺 本国剣法 我國練兵之制三軍練于郊,衛士練于禁苑,其禁苑練兵盛自 光廟朝,然止弓矢一技而已,如槍劍法技,既未之聞焉,宣廟既平倭寇,購得戚繼光紀效新書遣訓局郎韓嶠遍質東來將士,就其棍棒等六技作為圖譜。
In our military training system, Sangun三軍 is trained in suburb, Eji衛士 is trained in Kin'en禁苑 and training in Kin'en has been held often.
However the only martial art that was trained by Korean soldiers was archery. No spear, no sword arts were practiced.
After Japanese invasion, King Sonjo ordered to buy a Chinese martial art book Jin Xiao Shin Shu.
King sent Rokan and Hankyo, had them learn the 6 kinds of art included Konbo(stick)from Chinese military officers,and made a illustrated book.
我が国の軍隊訓練制度は、三軍は郊外で、衛士は禁苑で訓練を受けるようになっており、禁苑での訓練は光廟時から盛んに行われた。 しかし訓練は弓を撃つこと一つだけで、槍や剣、その他を扱う方法のようなものはなかった。

Bonguk Geom
本國劍 (俗稱新劍)
(增) 輿地勝覽曰黄倡郞新羅人也。諺傳季七歳入百濟、市中舞劍、觀者如堵。百濟王聞之名觀命昇堂舞劍倡郞、因刺王、國人殺之、羅人哀之、像其容爲假面、作舞劍之、状至今傳之

According to Yochishouran輿地勝覽, Hwang Chang was from Shila. He came to Baekje when he was 7.
When he does sword dance舞劍 on the street, audiences surrounded him like a wall.
King of Baekje heard about Hwang Chang, invited him and ordered to dance.
Hwang Chang stabbed(assassinated) the King.
When Hwang Chang was killed(in Baekje), people of Shila were so sad.
They made a mask looked like him and did sword dance.
The dance has been taught to present.
↑That's all for the Hwang Chang myth


(Suggestion) Hwang Chang must be Hwarang of Shila.
Shila and Japan were next each other so the dance and the skill must taught to Japan.
Now let's make Hwang Chang as origin(founder) of Bonguk geom.

About Japanese
巻首 技藝質疑
興倭封陳倭輙敢死突進我軍雖有持槍而帯剣者剣不暇出鞘 槍不得交鋒朿手而盡衄於兇刃皆由於習法之不傳故也

When confronting Japanese troops, the Japanese take fearless charge against us and even we have spears and swords, we're dead before drawing swords or wielding spears.

Wae Gum(Japanese sword)

The Japanese swords are made in all lengths and sizes. Every warrior carries a long sword that is called Haito. A small knife that is attached to the long sword is used for various purposes.
The Japanese sword is so strong and sharp that the Chinese sword cannot equal it.

According to the Waeji, it is recorded, "The Japanese soldiers are so courageous and stoic that they don’t put importance in life and death. In every war, they march forward and dance naked, holding a three foot long sword in their hands. There is no one who can defend against them."

Jin Xiao Shin Shu


This is what I found out when Japanese invaded Ming.
They jumped like dancing, charged foward like lightening.
Only what our soldiers could do was frightend.
Japanese bounded well, they jumped 3m in a moment.
They could attack us even there was 4.5m distance because the  length of Japanese sword was 1.5m.
It's hard for our sword to go closer, spear is too slow, they get slashed once they saw Japanese.
The Japanese swords are sharp and they have full command of the heavy swords.

But we aren't just scared.
Shooting from distance is effective against Japanese.
But Japanese charge and attack without fear.
They can get us while we are loading masket.
There is no way to stop them.
The way Japanese use sword is fast, our gunners are lumbering.
Our sword isn't efficient to act fast after abandoning masket.
Therefore we should have the same Japanese sword.



Following is from an old Korean site that revealing real history of Kendo(Kumdo) in Korea.
The site has gone.
It's hard for honest people to live in Korea.

우리나라에는 70년대부터 뜻있는 무술인들이 많이 생겨 무술의 역사를 찾고, 그 보급에 힘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수된 맥을 찾는다는 것은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역사를 주장하기보다는 이제는 검도를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에 중점을 두고 검도발전에 노력을 할 때이다. 실력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대한검도회  대한검도회의 구성원을 보면 과거 일제 식민지시대에 일본에서 죽도를 배웠던 고단자 선생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대한검도를 왜색이라고 비판할 근거는 이젠 되지 못한다.
일제시대에 검도를 배우고, 일본인 스승을 모셨던 원로 검도인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으며, 대한검도회에서 검도를 한국화 하려는
노력의 열기가 매우 뜨겁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하는 검도시합에서는 세계검도연맹의 경기규칙이 아닌 한국규칙을 적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판기의 색깔이나 시합 전에 인사하는 모습들이 일본의 국제경기규칙으로 제정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한검도회는 분명히 정부가 인정한 공인단증이 발급되는 검도회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곳이다. 어차피 현대에 있어서 무술의 의미가
전쟁이나 대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에 있다면, 대중적인 스포츠 검도가 무난하겠다. 대한검도회는 이런 부분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잘 해결해 주고 있다고 본다. 이 운동의 체계는 매우 과학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대한 검도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검도는 한국 것이라는 걸 너무 강조하다보니 구구한 별명을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 아쉽다. 검도가
한국 것이냐 일본 것이냐를 구분한다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의만큼 무의미한 논쟁이다.
현대에 들어서 죽도를 만들어 검도를 스포츠화 한 것은 분명히 일본이며, 한국은 일본의 죽도를 수입한 것이다. 국제경기의 규칙을
일본이재정했으니, 일본이 종주국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대한검도회가 왜색이라고 비판받는 가장 논리적인 이유는 대한검도회
에서 시행하는 '검도의 본(本)' 때문이다.
1886년에 일본 경시청에서 각파의 기술을 엄선하여 10개의 기본형을 만들어'경시청류 격검형'리라 하였고, 1906년 무덕회(武德會)에서
'무덕회류 검술형' 3본인 상중하단(上中下段)-천지인(天地人)을 정하여 시행했다.
1911년에 중학교에 검도를 정규과목으로 개설했으며, 1912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고류형(古流形)을 통합해서 대도 7본과 소도 3본을
제정하여 '대일본제국검도형'으로 칭했다. 그후 1917년과 1933년에 보완본을 만들어 시행했고, 1981년 검도형 해설서를 내놓았고, 현재
까지 보충해설서를 계속 내며 시행하고 있다.
검도를 대한검도회가 일본 검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검도의 본'의 수련을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만든 '대일본제국
검도형'을 그대로 수입해서 가르치는 한 일본검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가 검도의 본을 지금도 배워야 할 만큼 일본은
위대한가? 우리는 우리의 기본검형을 만들 능력이 없는가? 우리나라의 검술의 역사가 일본보다 앞서고 격검시합을 조선 말부터
했으니, 죽도 검도가한국 것이라는 논리전개는 옳지 않다.또한 대한검도회는 사단법인이며, 분명히 세계검도연맹의 산하단체이다.
세계검도연맹은 일본인들이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검도단체로써, 각 국가 지부단체 구성의 대부분은 일본인
2세로 되어 있다.
오직, 한국만이일본이 아닌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화를 하여 우리 것을 만들면 된다.
이제는 일본 검도라고배척할 것이 아니라, 배우고 흡수하여 한국식으로 재창작하면 된다. 해동검도가 한국검도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
오직 죽도만이 검도라고 인식되어왔던 우리나라 검도계에 진검과 검법, 전통에 대한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이 가장 큰 공로이다.
해동검도가 나온 이후에 많은 구설수가 있었으나, 그 이후 더욱 많은 검술의 파가 생겨났고, 서로 교환, 보완하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해동검도는 검법과 베기에 있어서 대한검도보다 강점을 가지고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대련과 공격력에 있어서 그
기술의 숙련이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해동검도의 검법연구와 체제변화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본국검(신검-새로 만든 검법-이라 한다

[여지승람]에 말하기를 황창량은 신라인이다……. 백제인이 그를 죽이니 라인(신라인)들이 슬퍼하였다……. 또 신라는 왜국과 이웃
하고 있으니 그 검무가 반드시 전해졌을 것이나 박혀낼 수가 없다. 이제 황창량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 어찌(우리가)
검보를 조선에서 얻어갔다는 모원의와 같겠는가, 조선이 서역의 등운에 비유되는 것은 조선이 스스로 우리나라의 검보를 만든 것이
고, 또 일본의 [상서]에 비유하는 것은 조선이 중국의 검보를 전해 받은 것이다. 그 만든 것과 전해 받은 것이 지금 모원의의 새로부터
백수십년이 지나서 논할 수가 없으므로 서로 주고 받은 것이 누구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스스로 익히고 스스로 전하지 않아 모씨의[무비지]를 기다려 전하고 익혔는지 알 수 없다. 전에 이미 모원의로
언급하여 이야기하였고, 지금잠시 본국검의 장에서 논의를 하였다.
황창랑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 고사가 인용된[여지승람]에도 어느 책을 참고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하지만[여지승람]에는 이첨의 고증이 있다. 이첨은 경주에 가서 칼춤을 주는 동자를 보게 되었는데, 황창의 고사는 그 동자
에게서 전해들은것이다. 이첨 자신도 황창의 고사가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칼춤의
기원을 황창으로 올려 잡은 것뿐이다. 역시 황창의 고사를 만들어 가탁한 것에 불과하며 본국검과 이 칼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무에도보통지]의 저자들은 우리나라에도 황창이 칼춤을 추었다는 고사가 있고, 모원의도 조선에서 검결을 얻어
갔다고 하는 만큼 검술의 전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 것이다. "이제 황창량을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고자 한다"라는
구절은 해석이 좀 미묘한데, 이 구절을 '이제 우리나라 검술의 기원이 밝혀졌다'는 식의 해석은 완전한 오류이다. 연기(緣起)와
기원(起源)의 의미는 다른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저자들도 단지 황창량의 고사를 우리나라 검술의 시초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무예도보통지] 본국검조에 본국검이 속칭 신검으로 불리며, 황창량의 고사로 인용되어 있는 관계로 본국검을
신라검법이라고 오해를 하였지만, [무예도보통지] 어디에도 본국검이  신라검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이 경우 신검은 신라검이 아니라 새로 제정된 검술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아래에도 신라인을 줄여 라인
이라고 하였으니 신라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라검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선조 31년(1598) 편찬된 [무예제보]에는
장창, 당파, 낭선, 쌍수도, 곤봉, 등패 등 6가지 기예밖에 없는데 반해 영조 35년(1759) 때 편찬된 [무예신보]에는 본국검의 이름이
보인다. 현재 [무예신보]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예신보]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 과거(科擧)중 무과(武科)의 시취과목을 보면, 1397년에 편찬된 [경제육전]이나 1485년 편찬된[경국대전]에는 도검류의
과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1744년의 [속대전]에 이르러서야 권법이나 쌍검의 이름이 보이며, 1785년의 [대전통평]에 이르러서야 본국검과
예도의 이름이 보인다. 따라서 본국검의 명칭은 [무예신보] 편찬 이전에는 없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이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검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칭 신검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라시대부터 존재한 검법이라면 이전의 사서(史書)에서 안보일
이유가 없으며, 무과의 시취과목에 쌍검보다 늦게 포함될 리가 없다.
무술의 기원과 민족적인 우월감을 접어 두고[무예도보통지]를 보자 전통시대에 붕국과 일본에도 무술서는 몇 권 안되며, 무술은
어차피 근세적인 현상이다. 한 중 일 모두 비슷한 시기에 무술에 관련된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예도보통지]만큼 효율적인 서적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2011/01/19 10:04 】 | Uriginal Issue | 有り難いご意見(0) | トラックバック(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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